"에어컨을 켜면 너무 춥고 끄면 너무 더워요. 온도를 낮게 설정하지 않으면 습도가 내려가지 않네요. 애들이 집에 있다보니 하루 종일 켜 놓게 되는데 다음달 전기료가 얼마나 나올지 걱정이네요"
매년 여름이면 이같은 고민이 반복된다. 특히 올해는 장마가 길어지면서 그만큼 고민 횟수도 늘었다.
사무실 풍경 또한 다르지 않다. 대부분 여직원들은 추위를 호소한다. 에어컨 송풍구와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은 여름 내내 냉방병에 시달린다.
"에어컨으로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휴미컨은 할 수 있습니다"
이대명 휴마스터 대표의 말이다. 휴마스터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윤석진 원장)의 기술을 기반으로 2018년 설립된 벤처기업이다. '휴미컨'(HumiCon)은 Humidity(습도)와 Air Conditioner(에어컨)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습도를 낮춰 사람이 느끼는 체감온도를 낮춰주는 것이 기본 원리다.
제습기를 써 본 사람이라면 이 말에 선뜻 믿음이 가지 않는다. 제습기를 사용하면 습도는 낮아지지만 제습기가 내뿜는 열기 탓에 쾌적함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온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습도만 제거하는 것이 휴미컨의 가장 큰 장점인 셈이다. 휴미컨을 먼저 알아본 유명인도 있다. 방송인 홍석천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이태원의 '마이첼시'에 휴미컨을 설치하기로 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 대표에게서 그 해답을 들어봤다.
◇ "바보야, 문제는 온도가 아니라 습도야"
서울 낮 최고 기온 29.9℃, 상대습도는 64%. 체감 온도가 30도를 훌쩍 넘긴 7월의 마지막 날. 이대영 휴마스터 대표를 만나기 위해 서울 지하철 6호선 상월곡역에서 내려 10분을 걸었다. 계속된 장마에 크게 덥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오락가락한 비에 습도가 높아 썩 유쾌하지는 않은 날씨였다.
예정된 곳에서 이 대표를 만나 그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가자 차가운 공기가 실외의 불쾌감을 날려줬다. 몸의 열을 좀 식히려는 순간 이 대표가 말했다. "여기 에어컨은 없어요. 휴미컨이 가동 중입니다" 실제로 사무실 책상에 놓여진 온도계를 보니 온도는 26.0도, 습도는 37%로 떨어져 있었다.
이 곳에는 '데시컨트(건조제)'를 활용한 제습기 '휴미컨(HumiCon)'이 있다. 휴미컨은 김이나 과자가 습도로 인해 눅눅해지는 것을 막아주는 '데시컨트(건조제)'를 활용한 제습기다. 기존 에어컨이 냉각을 통한 제습에 주안점을 뒀다. 냉방병 우려도 있고 에너지 비용도 많이 발생하는데 비해 휴미컨은 더위의 근본 원인인 습기를 제거하는 방식이다.
이 대표는 "휴미컨은 '데시컨트(건조제) 냉방'과 '공기청정', '환기' 기능이 모두 포함된 제품"이라며 "데시컨트 냉방기술은 제습 소재를 이용해 공기 중의 습기를 제거하고 제습소재에 흡착된 수분을 날려 보내 제습소재를 재생할 때에 열을 이용한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열을 이용해 냉방을 공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휴마스터의 데시컨트 소재는 탈취능력과 항균, 항곰팡이 성능도 최고 수준"이라며 오존흡착 능력도 있어서 공기청정에도 중요한 기능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휴미컨은 지난 4월 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에서 진행한 공인성능시험에서 제습효율이 에너지효율 1등급 전기제습기의 140%, 전열교환효율 냉난방시 모두 70% 이상의 성능을 나타내며 기존 가존 제품보다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기도 했다.
◇ 18년의 연구 결실, 제품화 직전 찾아온 위기…버려진 팩스서 '해답'
이 대표 역시 개발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이 대표의 전공은 기계공학이다. 하지만 기존과는 다른 데시컨트를 개발하는 과정은 화학에 가깝다. 그가 제품 개발에 착수한 것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표는 "KIST에 고분자공학을 전공하신 훌륭한 박사님들이 많이 계시는데 그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고백했다.
1년간의 연구 끝에 새로운 데시컨트 소재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온수를 활용한 테시컨트 쿨링 시제품까지 내놨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이 찾아왔다. 시험 가동 과정에서 데시컨트가 필터에서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내구성에 문제가 생긴 셈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미 1980년대부터 미국, 일본, 독일 등 해외에서 데시컨트 냉방기술에 대한 연구는 활발히 이뤄져왔다. 그러나 데시컨트는 내구성에 문제가 있었다. 시중에서 파는 김 안에 들어 있는 건조제를 망치로 내리치면 깨지듯이 냉방기술에 적용할 데시컨트도 강한 힘에 버티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 대표 역시 같은 문제에 직면한 셈이다. 해법은 쉽게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몇년이 흘렀다. 그는 "해법을 찾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논문과 씨름을 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풀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는 너무나도 우연처럼 풀렸다. 해법을 고민하다 선배의 조언을 받기 위해 사무실을 찾았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그 선배의 책상에 놓여 있던 팩스 한장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 대표는 "전세계를 뒤져도 찾지 못했는데 결국 국내 한 업체와 협업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며 웃었다.(기술 보호를 위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우여곡절 끝에 2008년 온수를 활용한 데시컨트 쿨링 제품이 완성됐다. 하지만 이 제품은 지역난방공사의 온수를 연결하는 방식이어서 범용성이 떨어졌다.
다시 9년에 가까운 연구 끝에 2017년 쉽게 설치가 가능한 지금 형태의 '휴미컨'이 개발됐다. 당시 산업통상 자원부 NET 인증까지 획득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8년에 휴마스터를 창업했다. 그는 "윤석진 원장님을 비롯한 동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휴마스터 설립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제습소재의 흡습 특성을 이용…"서울의 찜통더위, 지중해로 변신"
휴미컨에 적용되는 기술은 고분자 흡방습·항균·항곰팡이 소재로 구성된 제습소재 휴시트(HuSheet)와 이를 활용한 열회수 환기겸용 데시컨트 제습기술이다.
휴시트는 실리카겔 등 기존 제습제보다 흡습성 4~5배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는 고분자 소재로 성형, 가공이 용이해 시트(sheet)형태로 제품 생산을 할 수 있다. 실내 습도조절 벽지, 옷장·서랍장 곰팡이 방지 제품, 신발장 건조 및 탈취 제품, 책·악기 등의 보관용기, 특수포장재 등으로 활용 가능하다.
휴시트는 10만회 이상의 흡방습 사이클내구성시험을 통과하며 해외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고분자 흡방습 소재의 내구성 문제도 풀어냈다. 사실상 세계 최초의 기술을 보유한 셈이다.
그 결과 2010년 국내특허, 2011년 미국특허를 등록했으며 2014년에는 특허청 특허기술상을 수상했고, 2017년 산업통상자원부 신기술인증(NET)과 녹색기술인증(흡방습 기능성 벽지 소재기술)을 받으며 기술력을 인정 받았다.
이 대표는 "휴미컨의 핵심은 휴마스터가 자체 개발한 저온재생 제습소재 SDP(Super Desiccant Polymer)를 적용한 데시컨트 로터"라며 "열회수 환기운전시에는 회전형 전열회수 역할, 데시컨트 제습운전시에는 데시컨트 제습 역할의 복합기능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쉽게 말해 습기를 제거하면서 온도를 낮추는 기술로 휴미컨이 상용화되면 무더운 여름 에어컨 장기간 사용으로 인한 냉방병이 사라질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서울의 날씨는 천상의 기후라고 불리우는 지중해의 대표도시인 그리스 아테네가 부럽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서울의 경우 온도가 31℃, 습도가 70%면 체감 온도는 40℃에 육박한다. 그러나 '천상의 기후'라고 불리는 지중해의 그리스 아테네는 온도 31℃, 습도가 30% 밖에 되지 않는다. 이 경우 체감 온도는 그대로 31℃가 유지된다.
휴미컨은 그동안 인류가 해결하지 못하던 습도 문제를 해결해 서울의 찜통더위를 지중해의 천상의 환경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Vlad Magdalin